로켓은 하루면 만든다
지난번 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블로그 글에서, 다음에는 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프로덕트에 대해 공유해보겠다고 했다. 오늘은 그중 시도해본 하나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저 약간의 휴식기를 거치면서 AI Agent, AX, AI SaaS 관련 프로덕트를 어떤 걸 만들어볼 수 있을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AI 로 소프트웨어를 만들기가 너무나 빨라진 만큼, 너도나도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은 하루 만에 만들어버리는 세상이니 남아나는 아이디어가 없을 것이고 이미 다 시도된 것들이겠거니 생각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과연 어떤 프로덕트를 만들고 싶은가, 무엇이 목적이자 목표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고, 당연하게도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게 됐다. 누군가는 바이럴과 하입을 위해 그다지 쓸모는 없지만 아기자기하고 신기한 앱을 만들고 있었고, 오직 자극적인 도파민 컨텐츠를 위해 바이브 코딩을 활용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 듯했다. 예를 들어, 굳이 자비스라고 부를 필요도 없는데 자비스가 말도 해가면서 부동산을 크롤링하는 릴스라든가, 뭐만하면 AI가 다~ 해준다는 것들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런 걸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돈이 되는 프로덕트를 만들어야겠다.
- 정말로 AI Agent의 이점을 잘 살려서 실제 가치로 이어지는 서비스
- 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덕트
AI Agent 의 가치는 내가 생각하기에 '텍스트와 이미지를 24시간 똑똑하게 모니터링 및 액션까지 하는 것'이다. 이걸 어디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역시나 적용해 볼 만한 곳들은 이미 다 적용이 돼 있었다. 예를 들어 기본적인 B2B RPA 서비스들이나, 부동산 매물 알림, 주식시장 모니터링, 코인 매매 봇 같은 것들이었다. B2B 쪽으로 가면 사실 이것보다 훨씬 무궁무진한 분야들이 있겠으나 그 산업에 직접 발을 담그고 있지 않은 이상 그걸로 뭔가 해본다는 건 어렵다. 뭘 알고 하겠는가. 요즘은 노트북만 있으면 인터넷 되는 무인도에 떨어져도 창업해서 성공할 수 있다고 얘기하던데, 적어도 내가 어느 분야의 어느 정도 최신 전문가인 게 있을 때에야 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사업 백그라운드, 아이디어 발굴 단에 대해서는 이마저도 이렇게 간단하게만 얘기할 것은 아니고, 나중에 더 풀어보고 싶다.
어찌저찌 탐색을 하다보니 결국엔 내 백그라운드에서 주어진 것은 '중고 매물 모니터링'인 것 같았다. 여기에 착안하게 된 것도 우연하고 재미있다.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똑똑하게 탐색하기 위하여, 이 탐색 자체에도 AI Agent 를 활용하려고 하다보니 오픈클로를 세팅하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미니 PC 를 당근에서 구하려고 며칠을 들어갔는데, 요즘 RAM 값이 말도 안 되게 올라서 좋은 매물을 구하는 데 아주 오래 걸렸다. 매번 들어가서 확인하고, 이게 좋은 매물인지, 해당 제품 리뷰는 어떤지 클로드한테 검증 맡기고 하는 게 귀찮았다. 그러다가 그냥, 이거 알아서 실시간으로 찾아주고 비교도 해주고 꿀매물인지 판단도 해서 알아서 채팅해서 직거래하러 가기만 하면 되게 해주는 AI Agent 만들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진짜 페인포인트일까
페인포인트는 대충 잡혔고, 이게 진짜 널리 있는 페인포인트인지 대충 검증을 해보자라는 생각에 지인들을 대강 인터뷰해봤다. 중고로 사려는 데 매물이 안 구해지거나, 키워드 알림 걸어놔도 매번 들어가서 확인해봐야 하거나, 키워드 알림에 만족 못해서 하루에도 수십 번 들어가보고 있거나, 구해져도 누군가 빨리 채가거나 하는 경험이 있냐고 물었다. 당연히 중고 거래를 약간 열심히 해본 사람이면 겪었다고들 했다. 인터뷰 이외에도, ~ 삽니다 하는 글들이 있는 것부터가 사실은 '안 구해진다'라는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하면 당장 모니터링/판단/채팅까지 알아서 보내는 에이전트 만들면 되겠네라고 생각하고 만들기 시작하면 되는데, 창업을 할 때, 이 단계에서 바로 서비스를 만들면 안 된다고들 말해왔다.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싼 비용으로 검증하고, 신호가 Good enough to ship 일 때, 검증 중에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ship 하라는 것인데, 대표적으로 '프리토타이핑' 개념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 같다. 프리토타이핑은 마치 진짜 프로덕트를 완성해놓은 것처럼 속이고 검증을 해보는 것을 말하는데, 요점은 진짜로 될지도 모르는 사업을, 그 큰 로켓부터 만들어 한 번에 발사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실패 시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로켓을 만드는 데 하루면 된다. 기회비용이 극도로 작아졌다. 하지만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생각에 너무 매도되어서는 또 안 된다...
그래서 일단 타겟만 좁힌 후 당장 시도해보기로 했다. 프리토타이핑 말고, 그냥 바로 시도해서 검증 자체를 하는 것. 마찬가지로 내가 가장 쉽게 접근도 할 수 있고 백그라운드도 가지고 있으면서 ROI 가장 높은 시장이 뭘까를 생각했는데, 중고 악기, 그중에서도 일렉기타로 접근했다. 일렉기타 중고 시장은 국내에서는 거의 '뮬'이라는 커뮤니티가 독점을 하고 있다. 당장 확인해봤을 때는 하루에도 새로 올라오는 매물이 백 개는 넘는 듯했고, 그 외 일반 커뮤니티 게시글도 매우 활발했다. 심지어 매물이 잘 안 구해져서 몇 달이나 기다렸다가 못 참아서 해외직구 했는데, 그다음 날 바로 싼 가격에 올라오더라 하는, 이른바 '뮬의 법칙' 같은 것도 있었다. 여기가 제격인 것 같았다. (그때 당시엔..)
당장 일단 모든 플랫폼 다 긁자
위에서 로켓 만드는 데 하루면 된다고 했던 것에 매도되면 안 된다고 한 것에 대한 설명이다.
좋다. 당근, 중나, 번장 전부다 일렉기타 거래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나? 어차피 할 거, 한 번에 전부다 어댑터처럼 키워드 알림 + 스윕 크론잡 달아놓으면 되겠네 싶어서 뮬에다가 추가로 저것들까지 전부 모니터링 하는 에이전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처음 클로드로 만든 코드는 거의 하루 이틀 만에 완성이 됐다. 왜 이틀씩이나 걸렸냐라고 묻는다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몇 시간 만에 바이브 코딩으로 만든 프로덕트는 거의 잘 안 돌아가는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것을 만들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모든 기획과 암묵지와 if else 를 전부 알고 있고 전부 내뱉을 수 있는 거라면, 그러니까 AI 가 코딩만 대신해주는 수준이라면 진짜로 몇 시간 안에 만들 수 있기는 하다. 그런데 상세한 기획이나 이렇게 했을 때 어떻게 해야되지 같은 것들이 잘 생각나지 않는 상태로 만들면, 그것들을 처리하는 데 적어도 하루 이틀은 드는 것 같다.
결국은 이렇게 저렇게 방법을 찾아서 만들긴 했는데, 문제는 당근, 중나, 번장이 죄다 폐쇄적이라는 거였다. 뮬처럼 키워드 알림이 이메일로 와서 IMAP 으로 받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열려 있는 API 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결국 AutoInput 이나 Tasker 같은 휴대폰 매크로 앱까지 끌어다 써야 했다. 둘 다 유료라 결제도 했고, 그거 돌리겠다고 안 쓰는 중고폰도 싼 걸로 하나 샀다. 여기까지 오니까 이게 맞나 싶긴 했는데, 어차피 한 번에 다 잡을 거 플러그인처럼 토글하듯이 하면 되겠다 싶어서 그냥 밀어붙였다.
이것도 어찌저찌 만드는 데는 성공했는데, 일렉기타는 여기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당근이든 중나든 번장이든 일렉기타 매물 자체가 거의 안 올라오고, 결국 다 뮬로 모인다. 그러니까 뮬만, 그것도 이메일 키워드 알림 하나만 걸어놨어도 충분했던 거다. 굳이 당근 중나까지 다 잡겠다고 처음부터 매크로 앱에 중고폰까지 사가며 만들 일이 아니었다. 지금 그 매크로 앱이랑 중고폰은 거의 안 쓴다.
여기서 내가 좀 늦었다. 바이브 코딩의 진짜 이점은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보다는 빠르게 검증해보고 버릴 수 있다는 건데, 정작 나는 한번 만들어놓은 걸 버리는 데서 늦었다. 당근/중고나라/번개장터까지 전부 매물 스윕하는 걸 만들어놓고 진짜 찾을 만한 일렉기타 몇 건을 돌려보니, 검증하는 데 쓰는 토큰만 날리고 관련된 매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건, 타겟을 뮬로만 애초에 더 좁혔어야 맞았는데, 만드는 게 싸졌으니 일단 다 만들어버리자는 생각이, 오히려 '이건 아니다' 싶을 때 빠르게 접는 걸 방해한 셈이다. 그래도 배운 게 있다고는 생각한다.

비용이 옮겨갔다
이번에 제일 크게 남은 건 이거다. 이제 만드는 비용은 거의 0 에 수렴한다. 위에서 로켓을 하루면 만든다고 한 게 그 얘기다. 근데 그 비용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냥 자리를 옮겼을 뿐이라는 걸 이번에 몸으로 느꼈다.
뮬은 굉장히 폐쇄적이었다. 뮬의 법칙까지 있을 정도로 매물을 찾는 사람들이 많고, 그걸 계속 들여다보는 데 페인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 집중된 플랫폼인데다 이메일로 키워드 알림까지 주는 친절한 진입점인 것 같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결국은 종합해보면, 로켓을 만드는 건 쉬운데 로켓을 어디서 쏘는 게 좋을지, 여기서 쏴도 되는지, 누구를 태워야 좋을지에 대한 비용이 높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영업이다
그런데 이제부터 뭘 해도 이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사실 생각해보면 언제나 있었던 문제다. 지금 시도해본 건 그저 문제를 진짜 잘못 잡은 거거나, 타겟을 잘못 좁힌 거거나, GTM 전략이 잘못된 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프로덕트를 만들었으면, 그것을 어딘가에 갖다놔야 한다. 이 과정은 무조건 필요하다. 중요한 건 그 갖다놓는 과정에 필요한 것들 또한 AI로 만들고, 양산되고, 그래서 더 진입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이제는 더 발로 뛰어서 발산하고 영업하는 것이 정말 더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커머스 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신기하다. 물건을 떼와서 팔고, 사람을 모으고, 입소문을 내는 그 일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부터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실제로 물어본 적이 있는데, 돌아온 답은 이것도 사실 기술이라 회사에 들어가서 일해보면 알게 된다는 거였다. 만드는 것처럼 이것도 배우면 되는 영역이라는 말로 들렸고, 동시에 책상 앞에서 머리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로도 들렸다.
뮬 키워드 알림을 IMAP 으로 받아와서 판단하는 것만 걸어둔, 작고 멀쩡하게 도는 거 하나만 남았다. 매물 봇은 버렸지만 그 과정에서 잡은 감각(비용이 어디로 옮겨갔는지, 진입이 왜 진짜 문제인지)은 가져간다. 피벗을 하든 다른 걸 시도하든, 이번에 만든 것과 배운 걸 기반으로 다시 해볼 생각이다. 어차피 만드는 건 이제 어렵지 않다. 진짜 어려운 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거고, 그건 아마 다음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