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le Seo
2026.05.24 · 4 min read

엉망으로 하자.

요즘 꽂힌 말이 있다.

엉망으로 하자.

첫 번째의 유일한 목적은 두 번째를 시작하기 위함이다.

조급해하지 말자.

이번 글은 이 말들에 대한 요즘의 생각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지금 이 글

많은 것들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시기이다. 창업하던 팀을 뛰쳐나왔고 스스로 창업해보겠다고 이것저것 만들어보고 있고, 그 과정에서 최대한 AI 에이전트를 극대화하는 세팅을 하려고 하고 있고, 그동안 미흡했던 내 이력들과 경험들을 자산화하고 있고, 또 이렇게 글을 발행하려고 하고 있다. 또한 불안정하다. 처음 썼던 글에 의무감이 아니라 재미에 의해,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듯 써져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러기엔 여러 가지 모순들이 있기 마련이다.

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려면 적어도 그것이 '이야기'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그냥 뭔가 해봤는데, 이러고 있어요, 라고 하면 어색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이렇게 했더니 저렇게 됐고, 그래서 이랬더니 이런 걸 느꼈다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랬을 때 가장 큰 문제는, 글의 발행 자체를 주저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글을 쓰고 발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할 때면 나는 항상 '잘' 하려고 한다. 뻔한 스토리다. 잘하려다 보니, 완벽하려다 보니 주저하게 되고 시작을 잘 못한다고. 내 주변 사람들이 종종 나에게 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근데 나는 나를 잘 아는 게, 그러려면 좀 더 잘 알고 완벽할 줄도 알아야 되는데, 정작 그렇지도 못하다.

결론은, 그럴 바에야 그냥 엉망으로 시작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사실은 지금 이 포스트도 쓰기 전에 다른 주제로 글을 쓰고 있었다. 아마 다음 번에 더 다듬어서 발행하겠지만, 여전히 나는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대로면 글이 잘 안 나올 거 같아서 주저했던 거였고 미뤄졌다. 그러다가 그냥, 이럴 바에 '엉망으로 하자'라는 마음가짐에 대한 글을 써버리고, 못을 박고 가자라는 생각이 들어버려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약간은 일기 같은, 회고 같은 글이 되겠다.

세 문장의 출처

아주 솔직히 말하면 포스팅 케이던스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한 것도 확실히 맞다. 의식의 흐름을 서술하자면,

  • 지난번 글 쓴 지가 좀 됐으니 이제 슬슬 올려야 될 것 같다.
  • 근데 그다지 주목이 될 만한 이야기가 없다.
  • 그냥 누군가에게 들려준다 생각하고 다시 이야기를 떠올려보니 몇 개 있긴 하다.
  • 그 중 가장 좋은 걸 쓰려다 보니 준비가 안 됐다.(정확히는 그 이야기 결론이 안 났다)
  • 왜 또 다 준비해놓고 발산하려고 하나.
  • 그냥 엉망으로 하자.

서두에 언급했던 세 가지 문장은 각기 다른 출처를 가지고 있다.

엉망으로 하자.

라는 말은 한두 달 전, 우연히 SNS에서 누군가 나와 같이 뭔가 잘 시작하지 못하는 본인과 같은 사람에게 해주는 조언으로 하는 말을 들었던 것이었다. 그 영상에서 화자는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한다거나,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영역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처음 '엉망으로 하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다면 한결 편안해진다는 말이었다.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자꾸만 그 말이 떠올랐던 이유를 뜯어보면 이런 것 같다.

  • 보통은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하지 말고 일단 그냥 해보라는 조언은 많이들 한다.
  • 근데 그냥 해보는 걸 넘어서서 일부러 망치면서 시작하라는 것. 망쳐도 아무 문제 없다는 보더라인을 만들어준다.
  • '일단 시작하세요'라고만 말하면 시작하기 위해서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데, 이마저 엉망으로 하라고 해버리면 준비도 필요 없어버리게 만든다.
  • 그러니까 시작을 방해하는 요인을 단지 '적당해도 괜찮다'라는 말로 평탄하게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못할 수 있는 만큼 못해봐라'라며 정당화해 준다.

첫 번째의 유일한 목적은 두 번째를 시작하기 위함이다.

이 말은 클로드가 해준 말이었다. '무언가 시작하기가 두려워요'라며 상담을 했던 건 아니었고(사실 비슷하게도 종종 쓰긴 한다만), 이력과 경험을 자산화하기 위한 전략과 실행 방법을 짜면서 나온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개인 블로그는 뭘 쓸지와 벨로그, 인스타, 링크드인과 같은 다른 SNS 채널을 어떻게 운영할지 등등에 관해 논의해보던 중, 클로드가 첫 글에 너무 힘주지 말고 노력을 너무 기울이지 말라며 저 말을 해주었다. 엉망으로 하자는 말과 비슷하게, 첫 글은 다른 목적이 전혀 없고 두 번째 글을 쓰게 하기 위한 자극제 정도면 되니까 편안하게 쓰라는 말로 들리게 됐고, 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말인 듯싶다.

조급해하지 말자.

마지막 문장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좌우명 같은 문장이다. 굳이 출처를 따지자면 어릴 때부터 여유를 가지라고 하셨던 부모님, 그리고 나라는 모델을 학습시킨 거대한 언어 데이터가 아닐까.

결국에는 이렇게 빠르게 무언가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믿는 시간을 갖는 것이 더 필요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EO 채널에서 본 이러한 발산에 관한 너무 좋은 영상을 공유하고 싶다. 8:42 쯤의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